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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그 때, 그 사람] 불꽃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

기사에 나온 방송을 들어보세요! 49:26


출처 http://melody.su/catalog/classic/30711/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그런 시기들이 있죠. 제게는 유학을 했던 20대 중, 후반이 인생에서 잊기 힘든 경험을 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을 다니면서, 당시에는 드물었던 한국 학생으로 제가 익혔던 음악들과 마주쳤던 러시아 음악가들의 이야기들이 당시 많은 분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인데요, 음악가로 활동하기 위해 대부분이 겪는 유학생활을 자꾸 특별한 것처럼 알리는 듯해서 부끄러울 때도 많았습니다. 아무튼 가족들과 떨어져 본격적으로 유학생의 삶을 시작한 후 맨 처음으로 친숙해진 연주자는 엉뚱하게도 피아니스트가 아닌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인 레오니드 코간입니다.

 


출처 music.naij.com/artist-15580-leonid-kogan

 

어느 곡이나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는 최고의 연주자 코간은, 바이올린 마니아들에게는 언제나 박수갈채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죠. 그런데 같은 세대의 연주자들 중에는 어쩐지 좀 오래된 사람이라는 기분도 드는데요, 러시아 멜로디야 레이블의 좋지 못한 음질의 탓도 있지만, CD 시대의 만개를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코간은 1982년 58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연주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차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연주와 교육에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었기에 그 아쉬움이 더 크죠.

 


출처 https://www.letsplayconcertos.com/leonid-kogan-violin-prince

 

 

 

레오니드 코간의 파가니니 칸타빌레 연주 / Leonid Kogan - Cantabile, Paganini

 

제가 코간의 연주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막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다시 그 유행이 돌아오고 있지만, 당시는 LP의 마지막 시대였는데, 마침 멜로디야 레이블에서 코간의 연주가 다량으로 출시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모든 분야가 혼란스럽던 당시의 러시아에서 멜로디야가 남아있는 음원들을 별 체계없이 내놓는다고 생각했는데, 음반을 사서 연주를 듣는 순간, 어째서 그의 음반 재킷을 레코드 ?마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는지 알게 됐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그의 존재감은 카리스마와 섬세함, 컴퓨터같이 정확한 테크닉으로 들은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드러납니다. “아! 코간이다!” 하는 식으로요.

 

Leonid Kogan - Tchaikovsky Valse Scherzo op. 23

 

레오니드 코간은 1924년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페트롭스크에서 유태인 사진사 부부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아마츄어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어린 레오니드는 아버지를 통해 악기의 매력을 알게 되죠.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서 공개 연주회를 가지면서 스스로의 길에 확신을 갖게 된 코간은 그 후 모스크바로 옮겨 중앙음악학교에서 레오폴드 아우어의 수제자였던 아브람 얌폴스키를 사사하면서 빠르게 성장합니다.

 

 

아브람 얌폴스키 / 출처 http://www.findagrave.com/cgi-bin/fg.cgi?page=gr&GRid=97862234 

 

얌폴스키는 혹독한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는 선생님으로 유명했는데,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을 훌륭히 이겨낸 코간은 1941년 모스크바 필과 브람스 협주곡을 협연하면서 데뷔를 하고, 1947년 프라하 국제 청소년 페스티발에서 우승한 후, 1951년 선배인 오이스트라흐의 추천으로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여 1위를 수상합니다. 1955년 파리와 런던에서 데뷔하고, 1958년 피에르 몽퇴가 이끄는 보스턴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미국 데뷔 연주를 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이 카네기 홀 협연 후 청중들이 보내주었던 중간 휴식 20분 동안 쉬지 않고 울린 박수는 아직도 회자됩니다.

 

그 후 뮌쉬, 조지 셀, 유진 오르만디, 로린 마젤 등과 협연을 가지며 인기를 점차 올렸던 코간은 28세에 모교인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임용되어 제자를 기르는 데도 힘을 최선을 다했는데요, 빅토리아 뮬로바 등 많은 후학들을 길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며 힘들게 바쁜 일정을 이끌어 오던 코간은, 빈에서 베토벤의 협주곡을 연주하고 돌아오는 길 열차에서 평소 심각한 상황이었던 심장질환 때문에 발작을 일으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출처 http://vremyakultury.livejournal.com/195136.html

 

 

워낙 레퍼토리가 넓었지만, 코간은 러시아 연주자 중에 파가니니를 가장 잘했던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져 있고 또 즐겨 다루기도 했죠. 1949년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독주회를 했고, 협주곡 1번을 포함해서 기교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변주곡등도 매우 쉽고 화려하게 연주해내곤 했습니다. 우선 어린시절부터 닦아온 안정감있는 기교가 탄탄한 연주력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구요, 작곡가의 창작 의도를 근원부터 분석해서 표면적인 연주가 되지 않게 하는 현명함을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출처 http://minishop.com.hk/ps/tw/hifi/157-the-art-of-leonid-kogan-.html

 

강렬하면서도 팽팽한 기교적인 패시지 사이에 유연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코간의 스타일은 이런 든든한 기본기에서 만들어졌다고 하겠는데요,  파가니니뿐 아니라 그가 즐겨 다루던 베토벤, 멘델스존, 브루흐, 브람스, 프로코피에프 등의 레퍼토리가 모두 그의 강렬한 개성과 엄청난 연주력을 증명해주는 명연들로 남아있습니다.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가 담긴 다큐멘터리  

 

그런가 하면 레오니드 코간은 음악가족을 만들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의 누이인 바이올리니스트 엘리자베타가 그의 부인으로, 부부는 함께 레코딩도 만드는 등 연주를 함께 했죠. 딸 니나는 앙상블 전문 피아니스트로 현재까지 활동 중이고, 아들 파벨은 바이올린 전공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지휘자입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생전에 지휘자와 협연자로 많은 무대에 함께 올라 흐뭇한 연주를 들려준 바 있죠. 파벨의 아들 드미트리도 바이올리니스트로, 3대가 바이올린 계보를 만들고 있습니다.

 

 

레오니드 코간과 아내 엘리자베타 / 출처 www.discogs.com

 

 

레오니드 코간의 딸 니나 코간 / 출처 http://www.flowers.nashacanada.com/nina_kogan/index.html

 

레오니드 코간과  아들 파벨 코간 / 출처 http://msso-kogan.com/en/about/kogan/

 

 

레오니드 코간의 손자(파벨 코간의 아들) 드미트리 코간 / 출처 http://www.operaandballet.com/?person=317&page=catalog 

 

 

코간을 가리켜 오이스트라흐의 후계자, 혹은 라이벌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요, 코간을 오이스트라흐의 후계자라고 하는 것은 라벨이 드뷔시의 후계자라고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정확하지 않습니다. 개성과 추구하는 소리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16년이나 나이 차이가 났지만 대등한 동료 연주자 사이로 관계가 매우 좋았구요, 역시 바이올리니스트 집안인 오이스트라흐 가족과 코간 가족은 모두 친하게 지냈습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 출처 http://d.lib.ncsu.edu/collections/catalog/0228493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코간 역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와 티칭에 대해 늘 존중했다고 하죠. 코간은 젊었을 때부터 선배 연주자들의 스타일에 대해 깊이 경청하고 본받으려고 노력했는데요, 쟈크 티보, 야샤 하이페츠 등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온전히 충실한 연주와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해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태운 인물이 코간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0COsHca2YM

 

 

 

[이 기사는 KBS라디오 1FM <KBS 음악실>의 코너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9월 26일 방송을 기사화한 것입니다]

 

 

*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Leonid Kogan / 선곡표(클릭)

 

11. Beethoven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중 2악장 Larghetto
   * Leonid Kogan (Vn),
     Constantin Silvestri (지휘), Orchestre de la Societe des Concerts [9:42]

 

12. Paganini 
   * Caprice 9번,23번
   * Leonid Kogan (Vn) [9:00]

 

13. Tchaikovsky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중 3악장 Finale ; Allegro vivacissimo
   * Leonid Kogan (Vn),
     Constantin Silvestri (지휘), Orchestre de la Societe des Concerts [9:07]

 

 

 

 

 

스토리텔러 김주영 :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김주영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대학원에서 석사 및 연주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모스크바 프로코피에프 예술기념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 파리 그랜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등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KBS 주최 한국의 음악가 음반을 녹음하였고, KBS 클래식 FM ‘KBS 음악실’에서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코너와 1라디오 '문화공감' 의 '올 댓 클래식' 코너,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 아카데미 ‘정오의 음악회’ 진행자로서 클래식을 알리고 있다. 약 300여 명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KBS 음악실' MC로서의 활동과 그 외 여러 방송 경험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음악의 전 분야를 섭렵하려는 의욕이 늘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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