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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그 때, 그 사람] 악보 그 자체의 원칙, 지휘자 칼 뵘

기사에 나온 방송을 들어보세요! 59:04


출처 https://www.youtube.c1om/watch?v=bzAfcTvJ0D8

 

 

때로는 너무 편하고 익숙해서 그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그런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일이나 혹은 취미일 수도 있고, 특별한 애착을 가진 물건 등일 수도 있겠군요. 물이나 공기처럼 꼭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지만, 그 대상을 잃어 본 경험이 있거나 그런 상상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새삼 내 생활의 안정과 ‘나’ 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할 그 무언가의 존재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번 주인공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대 지휘자, 칼 뵘의 연주와 그가 남긴 음악들도 이렇게 늘 있어서 평소 그 중요함을 충분히 실감하지 못했던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동시대 카라얀이나 번스타인 같은 지휘자들의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져 일견 평범하고 무난하게 음악인생을 보낸 것처럼 여겨지지만, 20세기 오케스트라 음악의 지향점과 청중들의 취향, 인기 있는 레퍼토리 등 결정적인 요소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인물이었죠. 86년이란 긴 생애 동안 흔들리지 않는 음악적 입지와 원칙을 고수했고, 특정한 오케스트라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많은 연주와 음반을 남겼죠.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와 함께 그의 작품들을 직접 연구했고, 브루노 발터와 가깝게 교류하면서 모차르트 음악에 눈을 떴던 행운아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mCYKw66SVw

 

칼 뵘은 1894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부유한 명문가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다양한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게 되는데 지휘자 프란츠 샬크의 눈에 띄어 빈에 나가 음악학자 만디체프스키에게 음악을 배우게 되는데요, 만디체프스키는 브람스의 절친이기도 했죠. 1917년에 지휘자로서도 정식 데뷔를 하게 되고 1919년에는 그라츠대학에서 법률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1921년 발터의 초청으로 뮌헨국립오페라의 지휘자가 되었는데 발터로부터 모차르트, 바그너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죠.

 

1931년에는 함부르크 음악 감독 시절에 리햐르트 슈트라우스 작품의 성공으로 작곡가의 호의를 얻게 되고 슈트라우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1933년에 최초로 빈 국립오페라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해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1934년에는 프리츠 부슈의 후임으로 드레스덴 국립오페라를 맡아 황금시대를 구가합니다.

 


Karl Bohm: Orchesterprobe Tristan und Isolde

 

1943년부터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고, 1944년에는 슈트라우스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빈 국립가극장에서 가졌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공연하였으나 이듬해, 1945년 독일 패망과 함께 지휘활동 금지가 내려지는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1950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극장에서 베르크의 "보체크"로 큰 주목을 받고 1954년에는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 감독직을 다시 맡게 됩니다.

 


칼 뵘의 사인이 들어있는 1951년 사진 / 출처 http://www.rubylane.com/item/429-col-8629/Conductor-Karl-Boehm-Autograph-Photo-CoA

 

1956년 빈 국립 가극장을 사임한 이후에는 1957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 초청되어 모차르트의 "돈 죠반니"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였으며 이후, 뵘은 1970년대까지 정기적으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객원지휘를 했습니다.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베르크의 "보체크"

 

1964년에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에게 오스트리아 음악 총감독이라는 큰 명예를 주게 되죠. 1970년 빈 필의 명예 종신 음악감독을 비롯하여 1974년 함부르크 국립가극장의 명예 지휘자, 1977년 런던 심포니의 명예 음악감독 그리고 1978년 뮌헨 바이에른 국립가극장의 명예 지휘자로 여러 명예직을 수여 받기도 했습니다. 1974년 오스트리아 문화성은 칼 뵘 상을 제정하였고, 그 해, 독일 후기낭만주의 전통 계승의 상징인 '니키쉬 링'의 계승자였던 그의 업적을 기린 '니키쉬-뵘 링'으로의 개명되기도 했죠. 1981년 여름, 뵘은 잘츠부르크 교외의 별장에서 87세의 나이에 뇌내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79년. 카라얀이 칼 뵘의 85번째 생일을 축하하다 / 출처 http://www.salzburgerfestspiele.at/history/1979

 

칼 뵘의 지휘 모습을 처음 접한 분들은 특별한 개성이 없는 모우션에다가 자신만의 색깔도 그다지 많이 느껴지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0세기 초의 청중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하죠. 30대의 젊은 지휘자였을 당시 삼류 지휘자라는 혹평과 함께 ‘해석의 흔적이 전혀 없는’ 연주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요, 뵘은 악보와 그 악보를 만든 작곡가의 의도에 완전히 충실한 지휘자였고, 오히려 ‘이것이 나만의 특별한 해석이다’ 라고 청중에게 과시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인물이었죠. 지나치게 원칙적이고 화려함이 없어 답답하고 지루하다는 평은 작품에 따라 완벽하게 변신하는 그의 연주를 잘 들어보면 결코 한 두 가지 특징으로 그의 음악을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출처 http://www.klassikakzente.de/karl-boehm/biografie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와 상당히 깊은 교분을 맺고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슈트라우스도 자신보다 30년 차이가 나는 뵘의 실력을 인정해서 그의 지적에 따라 오페라 ‘말 없는 여인’ 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기꺼이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뵘이 연주하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나 교향시는 매우 명쾌하고 표현 능력의 극단을 오고 가는 재치있는 연주라서, 그가 지닌 엄격하고 학구적인 이미지를 무색하게 합니다.

 


칼 뵘이 지휘하는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말 없는 여인’(1972)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음반에 함께 실린 칼 뵘 / 출처 http://www.amazon.com/Richard-Strauss-Orchestral-Works-Orchesterwerke/dp/B00000E3ZS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햐르트 슈트라우스를 지켜보는 칼 뵘(가장 오른쪽) / 출처 http://operafresh.blogspot.kr/2014/06/karlheinz-bohm-son-of-karl-bohm-and.html

 

오케스트라 음악을 좋아하는 청중들이 늘 궁금해하는 것이 지휘자가 리허설 당시 보이는 모습일 텐데요, 칼 뵘은 젊은 시절 지킬과 하이드 그 자체였다고 하죠. 포디엄 위에서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신경질적인 폭군, 무대를 내려오면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답니다. 동영상으로 전해지는 슈트라우스 작품들의 리허설 장면을 보시면 작은 부분이라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넘어가지 않고 모두 지적하는 깐깐한 모습이지만, 자신이 슈트라우스에게 직접 들었던 악보 편집의 이야기라든지 정확한 해석에 필요한 정보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돈 후안> 빈 필하모닉 리허설 영상

 

흔히 리허설 테크닉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뵘 역시 자신만의 리허설 테크닉이 뛰어났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러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서로를 비교하는 멘트도 재치있게 사용하여 단원들을 통솔하기도 했습니다. 빈 필 단원들을 다그칠 때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런 실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고 하며 연주자들을 자극했고, 메트로폴리탄에서는 그 반대로 이야기하곤 했는데요, 대서양을 사이에 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만나 지휘자의 위트있는 거짓말을 확인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라고 합니다.

 


츨처 http://music.bugs.co.kr/artist/36026

 

칼 뵘의 만년은 지휘자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명예와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1933년 이후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고 있는 빈 필이 그에게만은 상임 지휘자를 부탁했던 일이 있었는데, 뵘은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좀 더 자유로운 음악적 의견과 활동을 위해 정중히 거절했죠. 결국 빈 필은 그에게 종신 명예 음악감독 자리를 주어서 존경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음악총감독이라는 큰 명예보다 정작 그가 좋아했던 것은 잘츠부르크의 명예시민이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이유를 묻자 ‘이제야 모차르트와 같은 동네 사람이 되었으니까’ 라고 설명했다는 흐뭇한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Karl_B%C3%B6hm

 

 

[9월 12일에 방송한 KBS 1FM <KBS 음악실> 코너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선곡표(클릭)

8. Mozart
   * 교향곡 41번 C장조 KV.551 “Jupiter” 중 1악장 Allegro vivace
   * Karl Bohm (지휘) Royal Concertgebouw Orch. [7:30]

 

9. Richard Strauss
   * <Don Juan(돈 후안)>Op.20
   * Karl Bohm (지휘) Wiener Philharmoniker [18:27]

 

10. Brahms
   * 교향곡 4번 E단조 Op.98 중 4악장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 Karl Bohm (지휘) Wiener Philharmoniker [10:20]

 

 


 

청취율 조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클릭)

 

 

 

스토리텔러 김주영 :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김주영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대학원에서 석사 및 연주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모스크바 프로코피에프 예술기념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 파리 그랜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등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KBS 주최 한국의 음악가 음반을 녹음하였고, KBS 클래식 FM ‘KBS 음악실’에서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코너와 1라디오 '문화공감' 의 '올 댓 클래식' 코너,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 아카데미 ‘정오의 음악회’ 진행자로서 클래식을 알리고 있다. 약 300여 명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KBS 음악실' MC로서의 활동과 그 외 여러 방송 경험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음악의 전 분야를 섭렵하려는 의욕이 늘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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