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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그 때, 그 사람] 20세기 음악계의 슈퍼맨,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기사에 나온 방송을 들어보세요! 51:58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지만, 같은 조건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하루 스물네 시간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물리적 시간을 뛰어넘어 마치 마흔여덟 시간처럼 늘어난 느낌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죠. 음악가들 가운데도 유독 부지런하고 알차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멋지게 살아낸 인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두 명의 작곡가가 떠오르는군요.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600곡이 훨씬 넘는 가곡과 현악 4중주, 피아노 트리오 등 실내악, 아홉 곡의 교향곡과 20 여곡의 피아노 소나타 등을 만들고 우리 곁을 훌쩍 떠난 슈베르트가 있구요, 연주자와 교육자로, 지휘와 평론, 신부님의 역할까지 눈코 뜰 새 없는 인생을 살았던 프란츠 리스트도 기억해야 할 음악계의 슈퍼맨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가히 20세기 음악계의 울트라 슈퍼파워맨이었던 사람입니다. 워낙 한 일도 많고 훌륭한 업적이 많기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 모두 소개한다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르죠. 미국 출신의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Leonard_Bernstein

 

탁월한 음악가로서의 활동만큼이나 인기도 최고였던 번스타인이 이뤄 놓은 일들은 정말 19세기 유럽 음악계의 리더였던 리스트의 그것과 맞먹는다고 하겠습니다.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저술가, 청소년 음악회의 진행자 등등...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던 거대한 인물이었는데요, 무엇보다 그의 인생에서 맨 먼저 언급해야 할 사실은 최초의 순수 미국 출신으로 미국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들은 물론이고 유럽의 최고 교향악단들도 모조리 접수한 능력의 소유자였다는 점입니다. 이것 자체가 실험 정신과 도전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흥미로운 번스타인의 일생의 중요한 단면이었죠.

 

그에 대해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헐리우드 남자 배우처럼 잘 생긴 외모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지휘 폼입니다. 그렇다고 번스타인의 높은 인기가 이런 것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쪽 면만 생각한 판단이겠죠. 무엇보다 어떤 음악이든 그의 지휘봉 아래서 그만의 스타일로 바뀌는 기적과 같은 결과가 지휘자로서 그의 정체성이자 인기의 핵심요소였다고 생각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스타일은 외면적인 연출이나 어줍잖은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얼핏 그의 음악성이 그의 지휘 모습처럼 과장되고 지나치게 표현이 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상당히 빈틈없고 꼼꼼함과 사려깊은 해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창작 초기 단계에서부터 잘 파악했던 것은 그가 작곡가 출신이니까 말할 필요도 없겠죠. 고전파부터 20세기 작품까지 못 다루는 곡이 없을 만큼 레퍼토리가 넓은 천재였습니다.

 

번스타인의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일생은 1918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죠.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으며 15세에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의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고, 1937년 당시 현대 음악의 대가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를 만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훗날 번스타인이 말러에 심취하게 된 것은 미트로폴로서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하죠. 졸업 후에는 프리츠 라이너,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을 배웠습니다.

 

1943년 뉴욕필하모니 음악감독이었던 아르투르 로진스키의 인정을 받아 뉴욕 필하모닉의 보조지휘자가 되었는데요, 기회는 갑작스레 찾아왔습니다. 그해 11월 14일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병으로 지휘를 못 하게 되자, 번스타인은 그를 대신해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CBS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된 이 한 번의 음악회로 번스타인은 유명세를 타고 단번에 인기를 얻게 되죠.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번스타인(1945) / 출처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Leonard_Bernstein

 

1957년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이듬해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고 그가 연주하는 음악회는 최대의 흥행을 보증하는 것으로 탈바꿈합니다. 1969년까지 뉴욕 필과 번스타인의 인기는 절정이었는데요, 이 시기에 남아메리카, 유럽, 소련, 일본 등지로 여러 차례 순회연주를 기록합니다. 한편 뮤지컬《웨스트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1957)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작곡가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포스터 / 출처 http://www.moviemadnesspodcast.com/tag/west-side-story/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투나잇

 

그런가 하면 번스타인은 미국 내 인권투쟁과 인종차별 등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했던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964년 번스타인은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인권운동에 가담하여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앨라배마에서 열린 셀마 대행진에 참가했구요, 베트남 전쟁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종전을 주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사회사상을 표현한 교향곡《카디시 Kaddish》(1963) 등을 발표했죠.

 


Leonard Bernstein. Symphony #3. Kaddish

 


1950년대의 번스타인 / 출처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Leonard_Bernstein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자신의 이상과 다르게 변모하는 미국사회의 모습으로 번스타인은 상실감으로 실의에 빠져들어서 한때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기도 했다고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1985년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영국, 일본, 그리스, 헝가리 등지에서 연주했으며 이후에는 주로 유럽을 무대로 연주활동을 했는데요, 72세라는 조금 아쉬운 나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080년대의 번스타인 / 출처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Leonard_Bernstein


작품으로는 《예레미야 교향곡》(1942), 교향곡 《불안의 시대》(1949), <카디쉬 교향곡> 《웨스트 사이드스토리》(1957), 영화음악 《워터프런트》 등이 있고, 음악에 관한 저서로는 《음악의 즐거움》(1959), 《음악 이해를 위한 젊은이의 콘서트》(1962), 《음악의 무한한 다양성》(1966) <대답 없는 질문> (1973)  등을 썼습니다.

 

《예레미야 교향곡》(1942)

 

이것들이 번스타인이 이뤄놓은 일의 전부일까요? 몰론 아닙니다. 멀티 뮤지션으로 그가 기획한 멋진 프로젝트 중 청소년 음악회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죠. 1958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 필과 함께 한 청소년 음악회는 CBS TV를 통해 방영되었는데요,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해설이 있는 음악회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고로 할 만큼 잘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박자, 멜로디 등 음악의 기본 개념과 소나타 등의 형식, 베를리오즈, 시벨리우스, 스트라빈스키 등 조금은 낯설었던 작곡가를 집중 소개하는 순서까지, 지휘자 번스타인의 재치와 유머, 말솜씨가 어우러져 높은 인기를 끌었죠. 내용도 충실했지만, 사람들은 피아노와 포디엄을 오가며, 때로는 커다란 악보가 그려진 차트를 활용하여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클래식 음악을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에 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 / Young People's Concerts: The Genius of Paul Hindemith / Bernstein - New York Philharmonic

 

사후에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번스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애호가들은 그의 지휘 폼에서 나오는 지나친 쇼맨쉽을 경계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의 지휘 폼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음악적 의도를 오케스트라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때로는 마냥 기분 나는 대로 춤추는 듯하지만, 그 안에 작곡가의 창작 의도를 명확히 파악한 핵심적이고 날카로운 지시가 들어있죠. 물론 그의 움직임이 TV, 영화, 뮤지컬 등 영상 매체에 민감하고 다분히 카메라를 의식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영상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는 애호가들에게 그의 몸동작이 음악이 흘러가는 진행 상황과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결코 음악의 본질을 상하게 하지 않죠.

 


번스타인(좌)과 카라얀(우) / 출처 http://escapefromabankruptstate.com/2014/01/09/the-wand-masters-leonard-bernstein-and-herbert-von-karajan/

 

번스타인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카라얀이 잘생긴 자신의 프로필을 보이기 위해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의 앵글을 스스로 조정했던 것도 자신의 지휘 모습을 통해 음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이와 비슷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과시욕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음악을 청중들이 좀 더 잘 이해하게 만들려는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네요. 동영상 등을 통해 번스타인의 지휘를 감상하시는 분들이 오늘부터 그의 작은 손짓과 변화무쌍한 얼굴표정 속에 숨어있는 음악적 의도와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비밀스런 그의 속마음을 발견해낼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출처 http://www.beethovenfm.cl/31-agosto-al-5-septiembre-leonard-bernstein/

 

 

 

[8월 8일에 방송한 KBS 1FM <KBS 음악실> 코너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을 재구성하였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선곡표

 

9. Dmitry Shostakovich
   * 교향곡 5번 D단조 Op.47 중 1악장 Moderato
   * Leonard Bernstein 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6:13]

 

10. Tchaikovsky
   * 발레 모음곡 <잠자는 숲속의 미녀> 1막 중 왈츠
   * Leonard Bernstein 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04:53]

 

11. Gustav Mahler
   * 교향곡 5번 C#단조 중 4악장 Adagietto: Sehr Langsam
   * Leonard Bernstein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1:00]

 

 

스토리텔러 김주영 :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김주영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대학원에서 석사 및 연주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모스크바 프로코피에프 예술기념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 파리 그랜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등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KBS 주최 한국의 음악가 음반을 녹음하였고, KBS 클래식 FM ‘KBS 음악실’에서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코너와 1라디오 '문화공감' 의 '올 댓 클래식' 코너,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 아카데미 ‘정오의 음악회’ 진행자로서 클래식을 알리고 있다. 약 300여 명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KBS 음악실' MC로서의 활동과 그 외 여러 방송 경험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음악의 전 분야를 섭렵하려는 의욕이 늘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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